육아의 재조명/육아 일기

拔苗助長(발묘조장)

kshroad 2022. 1. 25.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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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써니가 함께 책을 읽고 싶다며 내 손을 잡더니 책장으로 이끌었다. 동화책 몇 권을 읽더니, 써니가 책장에서 '달력' 하나를 찾아냈다. 바로 2018년에 아내가 우리 사진을 넣어 만든 달력이다. 아내와 만나기 시작하며 찍은 사진, 결혼식 사진, 신혼여행 사진, 그리고 가족들과 함께 한 많은 추억들이 담겨 있어서 써니와 사진을 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렇게 달력을 보다 보니 벌써 육아휴직을 한 지 1년이 다 되어 간다. 지난 1년을 돌아보니 써니와 참 많은 것을 함께할 수 있었다. 봄에는 따뜻한 햇살과 함께 돋아나는 새싹도 보았고, 여름에는 신나게 물놀이도 했고, 가을에는 울긋불긋 단풍도 구경했고, 겨울에는 펑펑 내리는 함박눈도 함께 맞았다.

육아휴직을 하게 되면서 '내가 이유식은 잘 해먹일 수 있을까?', '내가 목욕은 잘 시킬 수 있을까?', '내가 낮잠은 잘 재울 수 있을까?' 등등 수많은 고민과 걱정들이 앞섰던 것은 사실이다. 물론 지금 지난 1년을 돌아보면 걱정이 무색하리만큼 주어진 임무(?)를 잘 수행했던 것 같지만, 매 순간 어느 것이 써니를 위해 더 좋은 것인지 고민하게 된다. 그리고 또래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때에 맞추어 잘 발달, 성장하고 있는지 걱정하게 된다. 

 

그래서 더 책도 읽어주고 싶고, 운동도 시켜주고 싶고, 잘 먹이고 싶어 욕심을 부리게 된다. 어떤 말을 해 주어야 언어 발달에 좋을지 책도 읽어보며 써니에게 말하기를 재촉하고, 한 입이라도 더 먹이고 싶어서 사정하게 되고, 조금이라도 더 키가 클 수 있을까 해서 놀고 싶어 하는 써니를 억지로 눕혀 다리 마사지를 하곤 한다. 그럼에도 항상 불안하다. 왜냐면 내가 노력한 대로 가시적인 효과가 나타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나의 노력이 과연 써니에게 옳은 것인지, 좋은 것인지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안함에 휩싸일 때가 많아 잠을 설칠 때도 많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한 사자성어가 떠올랐다. 바로 《맹자(孟子)》의 〈공손추(公孫丑)〉상(上)에 나오는 중국 송(宋) 나라의 한 농부 이야기이다. 힘들게 모내기를 한 이후, 성격이 급했던 농부는 벼가 어느 정도 자랐는지 궁금해서 논에 가서 확인하게 된다. 논에 도착하고 보니, 자신이 심은 벼가 다른 사람의 벼보다 덜 자란 것 같아서 조바심이 나게 된다. 그래서 농부는 벼의 순을 잡아 빼어 자신의 벼가 다른 사람의 벼보다 더 키가 큰 것을 보고 만족하고 집에 돌아가게 된다. 결국 이튿날 벼는 이미 하얗게 말라죽어 버렸다. 이렇게 벼에게 이로운 행동이라고 여기고 행한 농부의 어리석은 행동 때문에 일을 그르치게 된다는 이야기를 '拔苗助長(발묘조장)'이라고 한다. 보통 이 사자성어를 사용하여 순리에 맞지 않게 서둘러 성과를 얻으려 이치에 맞지 않는 어리석은 행동을 하는 사람 또는 서둘러 행동하여 일을 그르치게 되는 경우 등 부정적인 상황을 묘사하고는 한다. 

내가 써니를 위한다고 행동했던 일들이 어리석은 농부처럼 벼의 순을 잡아 빼고 있었던 것들은 아닐까 돌아보았다. 실제로 지난 1년을 돌아보면, 말이 더딘 것 같다고 걱정하였던 때에도 얼마 지나지 않아 말문이 터져 옹알이를 했다. 그리고 밥을 잘 안 먹는 것 같아 걱정했던 때에도 몸무게도 키도 또래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잘 자랐다. 실제로 내가 물질적으로, 정신적으로 무언가를 더 해주어야겠다고 노력한 것들의 효과는 아주 미미했던 것 같다. 

그렇다면 진짜 써니에게 필요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고린도전서 3:7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1 Corinthians 3:7, KJV 
So then neither is he that planteth any thing, neither he that watereth;
but God that giveth the increase. 

 

진정 써니를 위해 내가 해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은 바로 '기도'였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내가 어떠한 노력을 한다 하더라도 써니를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심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순간, 써니를 위해 기도를 얼마나 하고 있었는지를 생각하니 부끄러웠다. 항상 써니에게 무엇을 먹일까, 무엇을 해 줄까 고민했는데, 그에 앞서 써니를 위해 기도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내가 해 주는 행동들이 써니에게 해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내가 해 주었던 행동들이 절대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그 행동들에 앞서 우리를 만지시고, 이끄시고, 돌보시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이다. 이 사실을 잊고 있어 내 수고와 노력으로 무언가 결실을 맺어보려 하니 항상 불안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결실을 맺게 하는 건 하나님이시지 나의 수고와 노력이 아니기 때문이다. 

앞으로 써니에게 무엇이 필요할까, 무엇을 해 주어야 할까 고민하고 불안에 떨기 전에 하나님께 우리 써니를 잘 자라게 해 달라고 먼저 기도하는 2022년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봄이나, 여름이나 가을, 겨울에도 우리 써니를 지켜보고 계시며 안아주고 계시니, 심거나 물 주었던 나의 수고와 노력에 의지하지 않기를, 더 나아가 자라게 하시는 이는 오직 하나님이심을 기억하기를, 그리고 내가 원하는 모습이 아닌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이끄시는 대로 잘 자라가는 써니가 되기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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