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shroad 2024. 3. 18. 12:00
728x90
반응형

  금요일 오후, 어김없이 써니를 하원시키려고 유치원에 가서 선생님께 인사드리고 써니와 마주 잡은 손을 앞뒤로 흔들며 기분 좋게 차로 돌아왔다. 그리고 오늘 하루 유치원에서 어떤 일이 있는지 묻고 답하고 있던 그 순간, 써니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리고 써니는 풀이 죽은 목소리로 나에게 말했다. 

아빠, 유치원에는 약속이 많아.
그런데 나 오늘 약속을 어겼어..

 
  써니의 말을 들어보니 이제 막 새 학기를 시작한 3월이기 때문에 유치원 선생님께서는 써니를 비롯한 친구들에게 교실에서 지켜야 할 약속, 밥 먹으면서 지켜야 할 약속, 화장실에 갈 때 지켜야 할 약속 등등 유치원 생활에 필요한 규칙들을 설명해 주시고 그것들을 지켜달라고 교육하시는 기간인 듯했다. 


  그런데 그 약속 중에서 가장 써니가 지키기 어려워하는 약속 하나가 있는 듯하다. 그것은 바로 '유치원에서 뛰지 않아요'라는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워낙 활동성이 많은 아이라서 조심하고자 여러 번 이야기를 하긴 했어도, 기본적으로 걷기보다는 뛰어가는 것이 익숙한 써니에게는 너무나도 지키기 어려운 약속인 것이다.

내가 눈을 떠 보니 나도 모르게 '경주'를 하고 있었어...
선생님이 많이 화가 나신 것 같은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상황을 설명하는 써니의 말을 들어보니, 유치원 교실 안에서 놀고 있을 때 자신도 모르게 발이 빨라져서 뛰어가게 되었고 그것을 본 선생님께서 뛰어가는 써니를 제지하셨던 것 같았다. 그래서 써니에게 선생님께서 왜 뛰지 말라고 하셨는지 물어보니 써니를 비롯한 친구들이 다치지 않기 위해서라는 것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자신도 모르게 뛰어가게 되었는데 선생님과의 약속을 잘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한 죄책감(?) 같은 것을 느끼는 듯했다. 그래서 나는 써니에게 지금 이렇게 약속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그리고 다음부터는  써니와 친구들이 다치지 않도록 뛰지 않겠다는 선생님과의 약속을 꼭 지켜야겠다고 다짐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훌륭하다고 토닥여주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매일, 그리고 매 순간 누군가와 '약속'을 하며 살아간다. 오늘 점심에 누군가와 함께 식사를 한다거나, 오후에 거래처와 계약 내용을 수정하기 위한 미팅 계획을 잡기도 한다. 그리고 또한 이번 달에는 꼭 살을 빼기 위해 운동하고 식단을 조절하겠다고 나 스스로와 굳게 다짐하기도 한다. <표준국어 대사전>에서 정의한 '약속'을 보게 되면 이와 같은 사회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다른 사람과 앞으로의 일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미리 정하여 둠. 또는 그렇게 정한 내용
<표준국어대사전>

 
  그러나 문제는 이 '약속'에 대한 마음가짐이 각각 다르다는 것이다. 같은 '약속'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이 때문에 설레어서 밤잠을 설치기도 하는데, 다른 누군가에게는 기억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리고 누군가는 이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 부단히 노력하며 애를 쓰는 반면, 누군가는 신경조차 쓰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약속'은 깨기 위해 하는 것이라는 터무니없는 말이 유행하기도 한다. 


  《字源 》에 따르면, '약속'에 해당하는 '約맺을 약'은 ' 糸(가는 실 사)'자와 '勺(구기 작)'가 결합한 형성자(形声词)이다. 이는 본래 “约,缠束也。”라 하여 '휘감아 묶다缠束' 또는 '줄로 묶다捆缚 '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가 후에는 '단속하다, 약속을 지키다约束' 라는 뜻으로 인신되었다가 '통제 및 지휘 통솔하다节制'라는 뜻까지 갖게 되었다.


  <표준국어 대사전>과 한자의 뜻을 종합해서 보면 '약속'이라는 것은 타인과 어떠한 일에 대하여 미리 정하여 두는 것인데, 이 '약속'을 통하여 당사자 간에 줄로 묶인 것과 같이 서로 연결시켜 준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약속'은 서로의 관계에 영향을 미치어 앞으로 두 사람의 관계가 어떻게 발전할 수 있을지를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타인과의 '약속'을 쉽게 생각하고 어겨버린다면, 우리의 관계 역시 쉽게 깨어지고 부서질 수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약속'을 쉽게 생각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선생님과 한 약속을 지키지 못해 시무룩한 써니를 보며 말씀 한 구절이 떠올랐다. 

 식후에 또한 이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고린도전서 11:25
In the same way, after supper he took the cup, saying, "This cup is the newo covenant in my blood; do this, whenever you drink it, in remembrance of me."
1Co 11:25

 예수님께서도 우리와 '언약'을 맺으심에 있어서 절대 쉽게 생각하지 않으셨다. 우리와 언약을 맺기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시어 친히 물과 피를 쏟으셨다. 그리고 우리와 '언약'을 맺어주시며 단 한 가지를 요구하셨는데,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피 흘리심을 기억하고 기념하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약속'의 대가는 바로 '예수님' 그 자체이기 때문에 약속을 계획하고, 행하는 모든 순간에 예수님을 생각하기를 바라시는 것이다. 


  우리 역시도 타인과 '약속'을 계획하고, 행하는 모든 순간에 예수님을 기억할 수 있어야 한다. 천지만물을 지으시고 지금 이 순간에도 일하시며 우리를 이끌어 가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믿는다면, 지금 이 사람과 '약속'을 하게 하심 역시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약속'을 쉽게 어겨서는 안 되는 것이다. 바쁜 일정에 잊을 수는 있어도, 적어도 써니처럼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함에 있어서 되돌아보는 시간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이 '약속'은 그 사람과 나를 연결시켜 주는 하나의 통로이고, 이 통로를 통해 그 사람과의 관계가 어떻게 발전될지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 관계는 예수님께서 맺어주신 것이기 때문에 절대로 쉽게 다루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오늘 하원한 써니에게 오늘은 선생님과, 친구들과 한 약속을 잘 지켰는지 물어봐 주어야겠다. 물론 오늘도 금방 잊고 교실에서 뛰어다니기도 하고 장난감 정리하는 것을 깜박하기도 하겠지만, 써니의 마음 안에 선생님과 한 '약속'이 있다는 것을 기억할 수 있도록 다시 한번 이야기해 주어야겠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 '약속' 안에는 하나님께서 써니의 손을 잡아 이끌어 가고 계시다는 사실을 깨닫고 감사할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써니야!
선생님과 한 약속을 어긴 것이 마음에 걸렸구나?
그래도 써니가 선생님과 한 약속을 기억하고 이렇게 마음이 불편한 것만으로도 아빠는 이미 훌륭하다고 생각해.
물론 다음에는 약속을 지키려고 노력해보는 것도 중요하고.
그렇게 선생님과의 약속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써니를 보면서 선생님도 너무 기뻐하실거야.

그리고 써니야, 한 가지 기억해야 할 것이 있어.
'약속'이라는 건, 또 하나의 관계를 맺어가는 것이란다. 그래서 약속을 지키는 것은 매우 중요해.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태초부터 이 약속을 위해 계획하시고 일하시고 계시거든.
그러니까 '약속'을 지키는 건, 하나님을 기억하는 것과 같다는 것을 기억하며 
 써니도 힘을 내어 약속을 지키려고 노력하면 좋겠어. 
여러분은 어떤 '약속'을 하셨나요?
그리고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시나요?
그리고 그 '약속' 뒤에는 우리의 삶을 이끌어 가고 계시는 하나님이 계심을 믿고 계시나요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