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재조명

벚꽃, 그리고 추억(追)

kshroad 2024. 4. 4.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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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이 되니 온 거리의 가로수에는 눈꽃같이 새하얀 벚꽃이 피기 시작한다. 하늘하늘한 바람을 맞으며 사르르 떨어지는 벚꽃을 보고 있으면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했던 '엄마'가 떠오른다. 엄마와 마지막으로 인사하던 그날, 병원 앞에는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2023년 4월 써니와 조카의 생일이 단 하루 차이라서 가족들이 함께 모여 생일파티를 하러 내려갔던 금요일 저녁, 내일이면 할머니를 볼 수 있다며 아이들은 잔뜩 신이 나서 뛰어다녔다. 우리도 병원 안에 모두가 함께 모여 있을 수는 없으니 요양원 1층 로비에서 케이크에 촛불을 꽂아 사진을 찍자며 내일을 계획했다. 산들산들 불어오는 바람과 그에 맞추어 흐드러지게 핀 벚꽃이 춤을 추는 덕분에 사진이 참 예쁘게 나올 것 같아 나 역시도 잔뜩 기대가 되었다. 
 
  그런데 그날 저녁부터 엄마는 정신이 혼미해지기 시작했다. 비록 힘들고 지친 기색이 있기는 하였지만, 분명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농담을 주고받을 정도였기 때문에 순식간에 엄마의 상태가 이렇게 악화될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못 하였다. 그리고 토요일 아침이 되자, 엄마 가슴과 코에 달려 있던 의료기기들에 빨간 불이 들어오고 날카로운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병원에서는 엄마를 단독 병실로 옮겨주었고 가족들을 불러오라고 이야기했다. 감사하게도 미리 가족들이 모여 있던 덕분에 금방 가족들이 모일 수 있었다. 

  지난 10여 년 동안 고비라고 생각한 순간들이 많이 있었지만, 이미 혼탁해진 눈동자와 가쁜 숨을 몰아쉬는 엄마를 보자마자 나는 한순간에 알 수 있었다. 
 

이제는 진짜 마지막이구나...

 
  엄마는 이미 의식이 흐려져서 대화가 불가능해졌지만, 조금이라도 기운이 남아 있을 때 써니와 조카에게 할머니와 인사할 기회를 주고 싶었다. 그리고 엄마가 몇 달 전부터 이번 써니와 조카의 생일 선물로 주고 싶어 미리 구매해 두었던 분홍 성경책도 챙겨서 할머니가 주신 선물이라고 하며 전달해 주었다. 이전과는 조금은 달리 많이 힘들어하는 할머니를 보며 아이들이 놀라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들었지만, 아이들은 선물을 받고 할머니께 감사하다며 뽀뽀를 해 주고 안아 주었다. 

  그렇게 우리는 엄마와의 마지막을 준비했다. 엄마를 휠체어에 앉혀 한 손은 내가, 다른 한 손은 누나가 꼬옥 잡고 애써 괜찮은 척 이런저런 시답지 않은 이야기로 엄마에게 말을 걸었다. 그렇게 한참을 서로 하고 싶은 말을 엄마에게 쏟아놓다가 보니, 엄마 눈에는 눈물이 주르륵 흐리고 있었다. 다행히도 엄마는 우리 이야기를 잘 듣고 있었던 것 같다.

  그날 저녁, 코로나 때문에 온 가족이 병원에 있지를 못해서 누나가 엄마 곁은 지키기로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토요일 저녁부터 엄마는 다시는 깨어나지 못할 깊은 잠을 잘 준비를 하였다. 병원에서는 정말 얼마 남지 않았으니 가족들을 다시 불러서 마지막을 준비해야 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물었다. 하지만 누나와 나는 조금만 있으면 예배를 인도해야 하는 아빠에게 차마 이야기를 하지 못하고, 아빠가 예배를 마칠 때까지 조금만 기다리기로 하였다. 기나긴 밤을 지새우며 누나는 엄마 귀에 속삭였다고 한다. 
 

엄마, 조금만 기다려!
아빠랑 선호가 주일 예배드리고 올테니, 그때까지만 좀 기다려줘!

  
  엄마는 누나의 간절한 목소리를 들었는지, 엄마는 정말 우리 가족 모두가 예배를 드리고 올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 주일 예배를 마치고 온 가족이 함께 모여 엄마가 천국으로 떠나는 길을 배웅하였다. 혼자 천국으로 떠나는 엄마를 위해 무엇을 해 줄 수 있을까 고민을 하다가, 그동안 엄마가 참으로 좋아하고 힘들 때 위로받았다고 했던 '선한 능력으로' 찬양을 계속 들려주기로 하였다. 

  그렇게 엄마는 가족들을 울음 섞인 인사와 찬양을 들으며 2023년 4월 23일 저녁 흩날리던 벚꽃과 함께 천국으로 떠났다. 


  어느덧 엄마가 하나님 곁으로 떠난 지 1년이 다 되어가고 있다. 이제 다시는 엄마를 볼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가슴 아프고 슬펐지만, 그보다도 이제는 엄마가 천국에서 편안하게 쉴 수 있다는 점이 너무 감사했다. 그리고 엄마가 더 이상 아프지 않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위로가 되었다.

  물론 아무렇지 않은 건 아니다. 요즘은 '사무치게 그립다'라는 말이 어떤 감정인지 뼈가 저리게 느끼고 있다. 그럴 리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운전을 하다가 지나가는 사람을 보며 돌아보게 되고, 쇼윈도에 걸린 투피스 정장을 보며 엄마에게 너무 잘 어울리겠다며 옷감을 만지작거리고 있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정신 차리고 뒤돌아 서면 가슴이 뻥 뚫린 것 같은 공허함과 상실감이 몰려온다.

  요새 벚꽃이 피어나 온 세상이 분홍색으로 물들어가기 시작하면서 꿈에 엄마가 자주 찾아온다. 그러면서 시간이 있을 때면 흩날리는 벚꽃과 함께 엄마를 '추억'하는 시간이 잦아졌다. 
 

추억(追憶) : 지난 일을 돌이켜 생각함.

국어사전에 따르면 '추억'이란 '追(쫓을 추)', '憶(생각할 억)'을 사용하여 지난 일을 돌이켜 생각한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追(쫓을 추)는 쫓는다는 뜻과 더불어 '거슬러 올라가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거기에다가 憶(생각할 억)은 心(마음 심)과 意(뜻 의)가 결합한 글자이니, '추억'한다는 것은 단지 생각하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누군가를 '추억'한다는 것은 그 사람과 함께했던 소중한 그때 그 시절로 거슬러 돌아가 그와 함께 나누었던 시간과 감정을 마음으로, 그리고 온몸으로 느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추억'한다는 것은 단지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와 함께 했던 시간과 감정을 마음과 온몸으로 느끼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면서 나는 엄마에게 너무 감사하다. 왜냐하면 내년 봄이 되면 벚꽃은 만개할 것이고, 그때면 항상 사랑하는 아내와 써니, 그리고 가족들과 함께 흩날리며 아름답게 떨어지는 벚꽃잎 하나하나를 보면서 엄마와 함께했던 수많은 시간과 따뜻했던 감정을 떠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올해에는 날씨가 따뜻하여 벚꽃이 일찍 만개할 것이라 한다. 우리만큼이나 엄마도 우리가 보고 싶었나 보다. 조금씩 분홍빛으로 물들어가는 4월, 흐드러지게 핀 벚꽃과 함께 엄마를 '추억'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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