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다 알고 있거든요
2025년, 올해로 6살이 된 우리 딸은 영화를 보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의도적으로 TV 프로그램을 전혀 보여주지 않은 것은 아니다. 짧은 에피소드로 진행되는 어린이 캐릭터 프로그램은 즐겨 보지만, 유독 영화만은 질색을 하며 싫어했다. 딸이 영화를 싫어하게 된 것은 온전히 한 가지 이유였다. 그것은 바로 영화의 기본적인 서사 가운데 등장하는 주인공이 겪는 어려움 때문이다. 여러 어린이 영화가 그러하듯 주인공을 소개하고 그 주인공을 중심으로 스토리를 전개해 간다. 그러면서 주인공이 어려움과 고난을 겪게 되지만 결국은 주변 친구들의 도움과 끝없는 노력으로 인해 문제를 해결하게 된다는 그런 전형적인 이야기 방식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주인공에게 어려움이 찾아오고 좌절하는 과정에서 딸은 주인공에 감정이 완전히 몰입이 되어 버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주인공이 쓰러지게 되면 함께 오열하고 통곡하게 된다. 그러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스스로 리모컨을 찾아 전원 버턴을 누르게 된다.
그렇게 영화를 단 한 번도 끝까지 보지 못했던 딸이었는데, 사실 영화를 보지 못하는 것이 크게 문제가 되지 않기에 그러려니 하고 있었다. 다만 유치원을 다니는 나이가 되었으니, 영화를 보며 진득하게 앉아 무언가에 집중하는 연습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영화를 보겠느냐 권했던 것이다. 그런데 본인이 그것을 견디기 힘들어하니, 억지로 강요할 필요는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유치원에 다녀와서 용기를 내어 영화를 보겠다고 말했다. 웬일일까 의아하기는 했지만, 결의에 찬 두 눈과 불끈 쥐어진 주먹을 보고는 우선 영화를 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간식을 준비하고 함께 앉아 영화를 보기 시작을 했다. 아니나 다를까, 주인공이 어려움에 빠질 때면 딸은 움찔거리며 내 손에 꽉 잡고는 놓지 않았다. 손바닥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 더울 법도 한데 한시코 놓지를 않았다. 그와 동시에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했지만, 시선은 여전히 영화를 향해 있었다.
그렇게 좋아하는 캐릭터의 영화를 끝까지 다 보고는 아주 뿌듯한 표정을 짓는 딸을 보면서 어떻게 영화를 보겠다는 용기를 내었는지 물음을 던졌다. 그러자 딸은 아주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답했다.
"주인공이 이길 거라는 걸 알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무서워도 끝까지 볼 수 있었어요. "
오늘 유치원에서 친구가 영화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해준 덕분에, 주인공이 어떠한 어려움을 겪을 것이고 그것을 어떻게 해결해 나가는지 전부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눈앞에 주인공이 아무리 어려움을 겪고 좌절하고 있더라도 결국에는 이겨내고 해피엔딩으로 끝나리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영화를 끝까지 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자신이 영화 보는 것에 성공(?) 한 것을 며칠 동안 자랑하는 딸은 보면서,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딸과 같은 마음가짐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하나님을 천지만물을 지으신 창주조라고 고백하며, 지금 이 순간에도 모든 것을 아시고 주관하시는 분이라고 늘 말한다. 그와 동시에 세상 권세를 다 이기시고 죽은 자 가운데에서도 부활하신 하나님을 믿는다고 찬양한다. 그런데 막상 현실에서 어려움과 고난을 마주하게 되면, 끊임없이 의심하고 걱정한다. 말로는 내 삶을 주관하고 계신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말이다.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전지전능한 하나님을 아버지라 고백하면서도, 내 눈앞에 있는 아주 사소한 일 하나에 무너지고 좌절하는 것이다.
우리는 내 눈앞의 작은 어려움에 집중하기보다는, 죽음도 이기신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해야 한다. 물론 현실에서의 어려움과 고난은 우리를 넘어뜨리고 눈물짓게 한다. 그 어려움만을 바라보게 되면 더 이상 소망이 없어 보이고, 해결이 될 수 없을 것 같아 보인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은 이 너머에 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며 살아가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그 어려움의 과정에서도 항상 우리와 함께하시며 우리의 눈물을 닦아 주신다. 그래서 주인공이 어떠한 어려움과 고난 가운데 처할지라도 결국에는 이겨낼 것처럼, 우리 역시도 세상의 어려움 가운데에서도 결국에는 승리케 힘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대적의 손에서 자신의 백성을 건져내시고 많은 전쟁에서 승리하게 하신 것처럼 말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이 비록 전쟁과 같이 지독하게 어렵더라도 결국은 이기게 하실 것을 믿고 의지해야 한다.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셨더라.
The LORD gave David victory wherever he went.
역대상 18:13 하반절
딸은 첫 영화를 성공리에 시청한 다음부터 간혹 영화를 함께 보곤 하는데, 이전처럼 주인공이 어려움에 처한다 하더라도 중간에 리모컨을 찾지 않는다. 긴장감에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영화를 보는 딸을 보며, 나는 오늘도 결국에는 웃게 하시는 하나님을 얼마나 신뢰하며 내 눈앞에 있는 작은 어려움에 흔들리지 않기를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