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재조명

내 안의 작은 여우

kshroad 2022. 4. 5.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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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을 시작하면서 한 다짐 한 가지가 있는데, 바로 ‘성격 통독’이다. 매 신년이 되면 상반기에 한 번, 하반기에 한 번, 총 두 번 통독해야겠다고 다짐하고서는 결국은 조금씩 밀려서 두 번을 다 통독하지 못하고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며 한 해를 마무리하곤 했다. 그래서 올해는 욕심을 버리고 한 번만 통독하더라도 조금 깊이 묵상을 해보리라 다짐하였다. 그래서 한 구절 한 구절 읽으며 단순히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깊이 생각해 보려고 노력한다.

그러던 중, 얼마 전 아가서를 읽던 중 나의 눈과 귀를 사로잡은 한 구절이 있다. 바로 아가서 2장 15절이다.

아가서 2:15
우리를 위하여 여우 곧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 우리의 포도원에 꽃이 피었음이라

Song of Songs 2:15, KJV
Take us the foxes, the little foxes, that spoil the vines: for our vines have tender grapes.

이스라엘의 기후는 건기와 우기로 이루어져 겨울에는 비가 많이 오지만 봄이 시작되면 비가 내리지 않는다고 한다. 포도나무의 꽃이 피는 시기는 3~4월로, 이 시기에 꽃을 피워 수정해야만 가을에 열매를 맺을 수 있다. 이렇게 열매 맺은 포도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중요한 먹거리가 된다. 그런데 이때 나타나는 불청객 하나가 있는데 바로 여우이다. 아주 작은 여우이지만, 이 여우가 나타나 포도밭을 돌아다니면 포도나무는 제대로 자라지도 못하는 동시에 수정을 못하게 되어 열매도 맺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이맘때 즈음이 되면 농부들은 이를 막기 위해 망대를 세워 여우로부터 포도밭을 지킨다고 한다.

아가서의 비유하고 있는 바는 아주 간단하면서도 아주 중요한 것을 우리에게 시사해 주고 있다. 맛있는 포도가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듯이, 풍성한 포도원은 ‘하나님의 나라’를 상징하여 우리를 위해 예비해주신 많은 것들을 의미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작은 여우는 그 포도원을 망치고 허물게 되는 ‘인간의 탐욕’을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즉, 우리의 욕심과 탐욕은 아주 작은 형태일지라도 결국은 하나님이 가꾸어 놓은 모든 것을 망가뜨리는 파괴성을 갖고 있는 것이다.

나에게 있어 이러한 ‘작은 여우’는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나름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 묵상하고 찬양하고 기도하며 삶 속에서 예수님의 향기를 나타내려 산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묵상하고 생각해 보니, 나의 ‘작은 여우’가 아주 가까운 아내를 향하고 있지는 않는가 생각해 보았다.


3월이 되어 아내는 새로운 도전을 하면서 강남으로 출퇴근하는 것과 동시에 여기저기 출장을 자주 다니게 되었다. 그래서 아내를 위해서 내가 뭘 해 줄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생각난 것이 바로 ‘웃으며 반겨주기’이다. 내가 퇴근하고 왔을 때, 아내가 반갑게 웃으며 반겨주었던 것이 참 위로가 되고 힘이 되었기에, 최대한 아내가 오면 반갑게 웃으며 반겨줘야지라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못한다. 하루 종일 업무와 학업에 시달리다가 써니가 하원할 때쯤이면 부리나케 달려가서 저녁밥을 준비하고 써니를 데리러 간다. 그리고 활동성이 있는 써니를 따라서 놀이터에서 미끄럼틀을 무한반복 타다가 집에 들어와서 밥을 먹이다 보면 반쯤 넋이 나가 있다.

그렇게 지쳐있는 상태에서 아내가 퇴근해서 오면 사실 웃어줄 힘조차도 없다. 이러면 안 되는데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나는 아침에 일어나서 써니 씻겨서 등원시키고, 밥 하고, 하원시키고 또 놀아주고 밥도 먹이는데, 이렇게 지쳐 있는 건 당연해!’라며 정신승리를 하고는 애써 미안함을 마음속에서 몰아내려 한다. 하지만 정작 마음은 썩 편치 않아 복잡 미묘한 감정으로 대화 주제를 돌리려 노력하곤 한다.

나의 마음 속의 아주 작은 여우, ‘정신승리’가 아내와의 관계를 망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새로운 근무환경에 적응하는 것은 물론, 새로운 동료들과 관계 맺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또한 피곤한 몸을 이끌고 만석인 버스를 타고 출퇴근하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잦은 출장으로 사람들을 만나는 것 또한 적지 않은 체력 소모가 되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내는 항상 밝은 얼굴로 웃으며 인사해 주었다. 내 안의 작은 여우 때문에 아내의 노력은 보지 못하고 단지 내가 하고 있는 것들만 보려 했던 것이다.


오늘부터는 내 안의 작은 여우를 잡아서 활짝 웃는 얼굴로 퇴근하는 아내를 맞아 꽃을 피워보려 한다. 그렇게 작은 여우를 잡음으로써 하나님께서 주시는 풍성한 열매를 누릴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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