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재조명

'키친타월' 같은 사람

kshroad 2022. 6. 15.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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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랜 시간 동안 자취생활을 하면서 요리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스스로 요리 과정을 즐기기도 하고, 내가 정성스럽게 만든 음식을 아내가, 그리고 써니가 맛있게 먹어 줄 때면 행복함을 느낀다. 요리를 하게 되면 자주 사용하게 되는 것이 있는데, 바로 '키친타월'이다.

키친타월은 다방면으로 쓸모가 많다. 키친타월은 흡수력이 좋아 요리 중간중간에 주변에 흘린 물을 닦을 때에도, 그리고 기름이 섞인 음식을 할 때 식재료의 물기는 물론 기름기를 제거하는 데에도 아주 탁월하다. 또한 일반 티슈와는 다르게 물을 흡수하였을 때에도 찢기지 않고 그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기 때문에 사용 후 처리하기에도 아주 수월하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써니 장난감으로도 사용하기에 아주 좋다. 얼마 전, 일이 일찍 끝나 집에 와서 써니 저녁밥과 반찬을 하고 나서도 하원 후 뭐하고 놀까 고민하고 있었다. 보통은 하원 후, 아파트 놀이터나 근처 공원에 가서 산책을 하는데 오늘은 밖에서는 대차게 비가 오고 있어서 대체 놀이가 필요했다.
그 순간, 내 눈에 물을 한껏 흡수한 키친타월이 들어왔다. 이걸로 뭐하고 놀까 고민을 하다가 물감 놀이를 하기로 했다. 키친타월 여러 장을 겹쳐 꽃 모양으로 만든 후 빨대에 고정시켜 놓고 , 붓으로 물감을 묻혀 알록달록 색을 입혀주는 놀이를 하기로 했다.


써니는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더 집중해서 키친타월에 색깔이 번져가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노란색, 빨간색, 파란색, 초록색... 키친타월 꽃을 여러 가지 색깔로 물들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놀이가 끝나고 알록달록 키친타월 꽃을 말리려고 정리하는 도중,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키친타월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나는 계획적인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보통은 하루의 일정에 대해서 대략 생각해 놓고 해야 할 일들을 정리해 놓는다. 그러다가 나의 계획에 없던 일이 불쑥 튀어나올 때면 매우 당황스럽고 당혹스럽다. 그래서 재빨리 경우의 수를 생각해서 계획했던 일과 새로운 일을 모두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고자 한다. 문제는 여기에서 표정관리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당황스러운 그 순간에 머리로는 여러 방법들을 강구하고 있다 보니, 나도 모르게 심각해지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상대방은 나의 기분이 상한 줄 알고 오해하는 경우가 있다.

반면, 아내는 이러한 돌발 상황에 조금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상황에서 아내 역시 당혹스러움이 표정에 나타나기는 하지만, 아내는 나보다 훨씬 여유롭게 이러한 상황을 대처한다. 그러한 여유로움이 참으로 부럽다고 생각한 적이 많다. 그 상황에 있어 여러 돌발 사항을 유연하게 받아들이기는 하지만 나 스스로의 모습은 흐트러지지 않는 모습, 여유로우면서도 강인하다는 생각을 했다.

오늘 보니, 키친타월이 바로 그러한 것 같다. 여러 색깔을 묻힌 물을 흡수하여 알록달록 물들어 가는 모습이 주변 상황을 여유롭게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일반 휴지와는 다르게 물을 흡수하여도 찢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모습 그대로를 잘 지켜가는 모습에는 또 강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여러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아가다 보면, 나의 계획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을 만나게 된다. 그럴 때에는 키친타월처럼 주변 사람과 상황에 있어서 유연하게 대처하고 그들을 안아줄 수 있어야 한다. 그와 동시에 나 스스로를 잃지 않고 잘 지켜내는 연습이 필요하다.

에베소서 4:1~3  
1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2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3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Ephesians 4:1-3, KJV  
1 I therefore, the prisoner of the Lord, beseech you that ye walk worthy of the vocation wherewith ye are called,  
2 With all lowliness and meekness, with longsuffering, forbearing one another in love;  
3 Endeavouring to keep the unity of the Spirit in the bond of peace.  


우리에게는 어지러운 이 세상 안에서 함께 어울려 살아가면서 모든 겸손과 온유, 그리고 오래 참음으로 주변에 사랑을 증거하며 서로 용납함으로써 하나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와 동시에 그리스도인으로서 구별되어 지금 하고 있는 모든 일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겨주신 일임을 기억하며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정체성에 걸맞게 행동해야 한다.

나 역시도 예기치 못한 일이 불쑥 튀어나와 당혹스럽고 짜증이 밀려올 때면, 알록달록 물어간 키친타월 꽃을 떠올리며 여유를 갖고 그리스도인으로서 합당하게 사랑으로 행동하기를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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