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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재조명 57

엄마가 참 좋아했겠다

내가 아침 피곤한 몸을 이끌고 일어나 제일 먼저 하는 것은 뜨거운 물에 샤워하는 것이다. 뜨거운 물에 몸을 맡기고 5초 정도 눈을 감고 있으면 밤새 잠들어 있던 세포 하나하나가 깨어나는 기분이다. 오늘 아침에도 어김없이 따뜻한 물에 몸을 맡기고 있다가, 문득 엄마가 생각이 났다. 이 따뜻한 물, 엄마가 참 좋아했겠다.  어린 시절, 우리 집은 조립식 건물이었다. 그래서 여름에는 찌는 듯이 더웠고, 겨울에는 살이 에일 듯이 추웠다. 건물 자체가 이렇게 열악했는데, 씻을 수 있는 화장실이라고 별 수 있었겠는가? 수도꼭지를 열면 여름에는 지열 때문에 따뜻하다 못해 뜨거운 물이 나왔고, 겨울에는 차디 찬 바람 때문에 보일러를 한참을 틀어야 미지근한 물이 나왔다. 그래서 우리 집은 매주 토요일이면 목욕탕에 가서 ..

삶의 재조명 2025.04.01

내가 그 마음 안다

딸을 재우고 어렴풋이 들려오는 소리에 잠이 깼다. 무슨 소리인가 싶어 거실로 나가보니, 아내가 퉁퉁 부은 눈을 하며 드라마를 보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드라마이길래 이렇게 우는 걸까 싶어 옆에 잠깐 앉았다가 나도 모르게 새벽 1시가 넘게 빠져들었다.  그건 바로 "폭삭 속았수다"라는 드라마였는데, 주인공이 연세가 많으신 할머니를 찾아가 도란도란 이야기 꽃을 피우던 장면이었다. 주인공 손녀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니, 할머니는 아주 다정한 말투로 말씀하신다. 일찌감치 막내를 잃고 슬픔을 가슴속 깊이 묻어두며 살아가는 주인공에게는 삶이란 참으로 쉽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어느 상황에서든지 자신의 편이 되어주는 남편이 있었지만, 가슴속 깊이 묻어둔 그 헤아릴 수 없는 슬픔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

삶의 재조명 2025.04.01

'드린다'는 것은?

개인적으로 가장 설렘과 기쁨이 가득한 순간이 언제인지를 묻는다면, 나는 단연 '선물을 준비하는 순간'이다. 물론 선물을 받는 것도 참 감사하고 기쁘지만, 선물을 준비하는 순간이 참으로 설레고 기쁨이 가득하다.선물이라는 것 자체가 누군가를 위해 준비하는 것이므로, 선물을 하겠다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귀한 시간의 연속이다. 왜냐하면 그 순간부터 오직 한 사람에게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어느 한 사람에게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순간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런데 선물을 준비하겠다고 마음을 먹는 순간부터 그 사람의 환경과 생활 방식 등을 고려하게 된다. 근래 그 사람에게 무엇이 필요할까? 이전부터 무엇을 좋아하고 있는지, 혹은 지금 특별한 상황에 처했는지, 또는 앞으로 어떤 일을..

삶의 재조명 2025.04.01

벚꽃, 그리고 추억(追)

4월이 되니 온 거리의 가로수에는 눈꽃같이 새하얀 벚꽃이 피기 시작한다. 하늘하늘한 바람을 맞으며 사르르 떨어지는 벚꽃을 보고 있으면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했던 '엄마'가 떠오른다. 엄마와 마지막으로 인사하던 그날, 병원 앞에는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2023년 4월 써니와 조카의 생일이 단 하루 차이라서 가족들이 함께 모여 생일파티를 하러 내려갔던 금요일 저녁, 내일이면 할머니를 볼 수 있다며 아이들은 잔뜩 신이 나서 뛰어다녔다. 우리도 병원 안에 모두가 함께 모여 있을 수는 없으니 요양원 1층 로비에서 케이크에 촛불을 꽂아 사진을 찍자며 내일을 계획했다. 산들산들 불어오는 바람과 그에 맞추어 흐드러지게 핀 벚꽃이 춤을 추는 덕분에 사진이 참 예쁘게 나올 것 같아 나 역시도 잔뜩 기대가 되었..

삶의 재조명 2024.04.04

태도(態度), attitude

2021년 3월, 육아휴직을 시작하면서 온전히 아이와 하루를 함께하였다. 그 시간을 통하여 아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놀이와 행동으로 표정이 어떻게 변하는지, 그리고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조금씩 알 수 있었다. 그러면서 나는 진짜 '아빠'가 되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과정의 미학 써니가 태어나기 전, 아내와 이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 써니가 곧 태어나는데 솔직히 아직 실감이 나지 않아. 써니가 태어나면 잘할 수 있겠지? 👩 나는 10달을 내 뱃속에 품고 있었지만, jesushanyuedu.tistory.com 2013년 처음으로 교직 생활을 시작하면서 나의 20대 후반과 30대 초반은 온통 아이들과 동료 교사들로 가득했다. 아무리 힘들고 지치더라도 우리 반 아이들이 주는 행복감과 기..

삶의 재조명 2024.03.03

'온유'의 첫 번째 이야기 : 얼음들

2월로 접어들자 날씨가 제법 따뜻해지는가 싶더니 다시 하얀 눈이 펑펑 내리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대중교통을 타려고 버스 정류장에 우두커니 서서 하얗게 내리는 눈을 맞았다. 그렇게 잠깐 눈을 맞았는데 녹아버린 눈 때문에 으슬으슬 추워졌고 해가 지고 나니 몸이 얼어버리는 것 같았다. 그렇게 해질 무렵 창밖으로 소복하게 쌓이는 눈으로 조금씩 얼어가는 세상을 바라보면서 한 노래가 생각이 났다. "Akdong Musician(AKMU) - 얼음들(MELTED)" 붉은 해가 세수하던 파란 바다 검게 물들고 구름 비바람 오가던 하얀 하늘 회색 빛들고 맘속에 찾아온 어둠을 그대로 두고 밤을 덮은 차가운 그림자마냥 굳어간다 얼음들이 녹아지면 조금 더 따뜻한 노래가 나올텐데 얼음들은 왜 그렇게 차가울까 차가울까요 Why ..

삶의 재조명 2024.02.26

'키친타월' 같은 사람

나는 오랜 시간 동안 자취생활을 하면서 요리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스스로 요리 과정을 즐기기도 하고, 내가 정성스럽게 만든 음식을 아내가, 그리고 써니가 맛있게 먹어 줄 때면 행복함을 느낀다. 요리를 하게 되면 자주 사용하게 되는 것이 있는데, 바로 '키친타월'이다. 키친타월은 다방면으로 쓸모가 많다. 키친타월은 흡수력이 좋아 요리 중간중간에 주변에 흘린 물을 닦을 때에도, 그리고 기름이 섞인 음식을 할 때 식재료의 물기는 물론 기름기를 제거하는 데에도 아주 탁월하다. 또한 일반 티슈와는 다르게 물을 흡수하였을 때에도 찢기지 않고 그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기 때문에 사용 후 처리하기에도 아주 수월하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써니 장난감으로도 사용하기에 아주 좋다. 얼마 전, 일이 일찍 끝나 집에 와서 ..

삶의 재조명 2022.06.15

내 안의 작은 여우

2022년을 시작하면서 한 다짐 한 가지가 있는데, 바로 ‘성격 통독’이다. 매 신년이 되면 상반기에 한 번, 하반기에 한 번, 총 두 번 통독해야겠다고 다짐하고서는 결국은 조금씩 밀려서 두 번을 다 통독하지 못하고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며 한 해를 마무리하곤 했다. 그래서 올해는 욕심을 버리고 한 번만 통독하더라도 조금 깊이 묵상을 해보리라 다짐하였다. 그래서 한 구절 한 구절 읽으며 단순히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깊이 생각해 보려고 노력한다. 그러던 중, 얼마 전 아가서를 읽던 중 나의 눈과 귀를 사로잡은 한 구절이 있다. 바로 아가서 2장 15절이다. 아가서 2:15 우리를 위하여 여우 곧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 우리의 포도원에 꽃이 피었음이라 Song of Songs 2:15, KJV..

삶의 재조명 2022.04.05

엄마, 그리고 여자

내 핸드폰에는 ‘엄마’가 아닌 엄마 이름으로 저장이 되어 있다. 내가 아는 한, 엄마는 결혼하면서부터는 아내로서, 그리고 엄마로서 살아왔기에, 그저 나의 엄마가 아닌 한 여자로서 살아갔으면 하는 마음이 담긴 하나의 바람이기도 하다. 내가 엄마도 여자인 것을, 아니 한 인격체로서 꿈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은 고등학생이 되어서 이다. 17여 년을 그저 엄마로서의 삶을 살아오던 사람이 어느 순간 목표가 생겼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밤낮으로 노력하는 모습이 나에게 아주 크고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었다. 어느 날 저녁, 엄마가 저녁식사를 하면서 나에게 아주 들뜬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선호야, 엄마가 목표가 하나 생겼어. 엄마, 운전면허 딸 거야!” 군산이라는 소도시에서도 시골에서..

삶의 재조명 2022.01.19

Husband-and-wife Play

2022년, 결혼을 한 지 햇수로 5년이 되어간다. 정말 5년이라는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간 것 같다. 5년이라는 시간 동안 아내도, 나에게 많은 변화들이 있었다. 그 변화 중에서도 가장 신기한 것은 얼굴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는 것이다. 표정만 봐도 왜 웃음이 터졌는지, 왜 기분이 상했는지,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하다. 물론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삐걱거리는 것들이 있기도 하다. 배구 용어 'Husband-and-wife Play'처럼 당연히 내가 이만큼이나 수고했는데 이 정도는 알아서 해 주겠지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가, 무언가가 잘못되거나 지체되는 순간 아내를 향한 원망과 서운함이 밀려올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나도 모르게 서운한..

삶의 재조명 2022.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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