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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재조명 54

벚꽃, 그리고 추억(追)

4월이 되니 온 거리의 가로수에는 눈꽃같이 새하얀 벚꽃이 피기 시작한다. 하늘하늘한 바람을 맞으며 사르르 떨어지는 벚꽃을 보고 있으면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했던 '엄마'가 떠오른다. 엄마와 마지막으로 인사하던 그날, 병원 앞에는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2023년 4월 써니와 조카의 생일이 단 하루 차이라서 가족들이 함께 모여 생일파티를 하러 내려갔던 금요일 저녁, 내일이면 할머니를 볼 수 있다며 아이들은 잔뜩 신이 나서 뛰어다녔다. 우리도 병원 안에 모두가 함께 모여 있을 수는 없으니 요양원 1층 로비에서 케이크에 촛불을 꽂아 사진을 찍자며 내일을 계획했다. 산들산들 불어오는 바람과 그에 맞추어 흐드러지게 핀 벚꽃이 춤을 추는 덕분에 사진이 참 예쁘게 나올 것 같아 나 역시도 잔뜩 기대가 되었..

삶의 재조명 2024.04.04

태도(態度), attitude

2021년 3월, 육아휴직을 시작하면서 온전히 아이와 하루를 함께하였다. 그 시간을 통하여 아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놀이와 행동으로 표정이 어떻게 변하는지, 그리고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조금씩 알 수 있었다. 그러면서 나는 진짜 '아빠'가 되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과정의 미학 써니가 태어나기 전, 아내와 이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 써니가 곧 태어나는데 솔직히 아직 실감이 나지 않아. 써니가 태어나면 잘할 수 있겠지? 👩 나는 10달을 내 뱃속에 품고 있었지만, jesushanyuedu.tistory.com 2013년 처음으로 교직 생활을 시작하면서 나의 20대 후반과 30대 초반은 온통 아이들과 동료 교사들로 가득했다. 아무리 힘들고 지치더라도 우리 반 아이들이 주는 행복감과 기..

삶의 재조명 2024.03.03

'온유'의 첫 번째 이야기 : 얼음들

2월로 접어들자 날씨가 제법 따뜻해지는가 싶더니 다시 하얀 눈이 펑펑 내리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대중교통을 타려고 버스 정류장에 우두커니 서서 하얗게 내리는 눈을 맞았다. 그렇게 잠깐 눈을 맞았는데 녹아버린 눈 때문에 으슬으슬 추워졌고 해가 지고 나니 몸이 얼어버리는 것 같았다. 그렇게 해질 무렵 창밖으로 소복하게 쌓이는 눈으로 조금씩 얼어가는 세상을 바라보면서 한 노래가 생각이 났다. "Akdong Musician(AKMU) - 얼음들(MELTED)" 붉은 해가 세수하던 파란 바다 검게 물들고 구름 비바람 오가던 하얀 하늘 회색 빛들고 맘속에 찾아온 어둠을 그대로 두고 밤을 덮은 차가운 그림자마냥 굳어간다 얼음들이 녹아지면 조금 더 따뜻한 노래가 나올텐데 얼음들은 왜 그렇게 차가울까 차가울까요 Why ..

삶의 재조명 2024.02.26

'키친타월' 같은 사람

나는 오랜 시간 동안 자취생활을 하면서 요리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스스로 요리 과정을 즐기기도 하고, 내가 정성스럽게 만든 음식을 아내가, 그리고 써니가 맛있게 먹어 줄 때면 행복함을 느낀다. 요리를 하게 되면 자주 사용하게 되는 것이 있는데, 바로 '키친타월'이다. 키친타월은 다방면으로 쓸모가 많다. 키친타월은 흡수력이 좋아 요리 중간중간에 주변에 흘린 물을 닦을 때에도, 그리고 기름이 섞인 음식을 할 때 식재료의 물기는 물론 기름기를 제거하는 데에도 아주 탁월하다. 또한 일반 티슈와는 다르게 물을 흡수하였을 때에도 찢기지 않고 그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기 때문에 사용 후 처리하기에도 아주 수월하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써니 장난감으로도 사용하기에 아주 좋다. 얼마 전, 일이 일찍 끝나 집에 와서 ..

삶의 재조명 2022.06.15

내 안의 작은 여우

2022년을 시작하면서 한 다짐 한 가지가 있는데, 바로 ‘성격 통독’이다. 매 신년이 되면 상반기에 한 번, 하반기에 한 번, 총 두 번 통독해야겠다고 다짐하고서는 결국은 조금씩 밀려서 두 번을 다 통독하지 못하고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며 한 해를 마무리하곤 했다. 그래서 올해는 욕심을 버리고 한 번만 통독하더라도 조금 깊이 묵상을 해보리라 다짐하였다. 그래서 한 구절 한 구절 읽으며 단순히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깊이 생각해 보려고 노력한다. 그러던 중, 얼마 전 아가서를 읽던 중 나의 눈과 귀를 사로잡은 한 구절이 있다. 바로 아가서 2장 15절이다. 아가서 2:15 우리를 위하여 여우 곧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 우리의 포도원에 꽃이 피었음이라 Song of Songs 2:15, KJV..

삶의 재조명 2022.04.05

엄마, 그리고 여자

내 핸드폰에는 ‘엄마’가 아닌 엄마 이름으로 저장이 되어 있다. 내가 아는 한, 엄마는 결혼하면서부터는 아내로서, 그리고 엄마로서 살아왔기에, 그저 나의 엄마가 아닌 한 여자로서 살아갔으면 하는 마음이 담긴 하나의 바람이기도 하다. 내가 엄마도 여자인 것을, 아니 한 인격체로서 꿈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은 고등학생이 되어서 이다. 17여 년을 그저 엄마로서의 삶을 살아오던 사람이 어느 순간 목표가 생겼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밤낮으로 노력하는 모습이 나에게 아주 크고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었다. 어느 날 저녁, 엄마가 저녁식사를 하면서 나에게 아주 들뜬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선호야, 엄마가 목표가 하나 생겼어. 엄마, 운전면허 딸 거야!” 군산이라는 소도시에서도 시골에서..

삶의 재조명 2022.01.19

Husband-and-wife Play

2022년, 결혼을 한 지 햇수로 5년이 되어간다. 정말 5년이라는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간 것 같다. 5년이라는 시간 동안 아내도, 나에게 많은 변화들이 있었다. 그 변화 중에서도 가장 신기한 것은 얼굴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는 것이다. 표정만 봐도 왜 웃음이 터졌는지, 왜 기분이 상했는지,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하다. 물론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삐걱거리는 것들이 있기도 하다. 배구 용어 'Husband-and-wife Play'처럼 당연히 내가 이만큼이나 수고했는데 이 정도는 알아서 해 주겠지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가, 무언가가 잘못되거나 지체되는 순간 아내를 향한 원망과 서운함이 밀려올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나도 모르게 서운한..

삶의 재조명 2022.01.18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어느덧 30대의 중반을 넘어서는 나이가 되었지만, 나 자신을 돌아보면 여전히 철부지 어린아이 같을 때가 많다. 특히 어떤 일을 진행함에 있어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겨 계획에 차질이 생길 때면 나도 모르게 '욱'하고 짜증을 내게 된다. 머리로는 누구의 잘못도 아닌 것을 알고 있지만 마음에서는 짜증을 털어내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에 짜증을 내고 있는 나 자신을 보면 더 짜증이 나는 악순환이 시작된다.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에 꽁 해지는 나 스스로를 보면서 참 옹졸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사실 몇 시간, 아니 몇 분만 지나고 돌이켜 보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인데 왜 그렇게 혼자 열을 냈던 것인가 하고 머쓱하기도 하다. 그런데 더 어린아이 같은 모습은 그 이후에 나타난다. 그 옹졸했던 모..

삶의 재조명 2021.08.25

추억

햇볕이 쨍쨍해지더니 어느덧 여름이 한 걸음 다가온 것 같다. 이렇게 무더운 여름이 되면 외할머니가 떠오른다. 어린 시절 가만히 있어도 무더운 날씨였지만, 할머니 무릎을 베고 누워 사카린을 넣고 찐 옥수수를 먹으며 오손도손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더운지도 모르고 한참을 깔깔거리고 웃었다. 특히 저녁에 대청마루에 모기장을 설치해서 할머니가 손수 만드신 간식들을 먹으며 별을 보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그리고 계절에 따라 봄이면 들에 나가서 쭈그려 앉아 쑥과 달래를 캤던 기억, 여름이면 밭에 가서 옥수수를 따서 하모니카를 불었던 기억, 가을이면 뒤뜰에 있는 감과 밤을 따려고 막대기를 들고 이리저리 휘둘렀던 기억, 겨울이면 뜨끈뜨근한 군고구마를 구워주셨던 기억 등등,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

삶의 재조명 2021.06.20

내가 감당해야 할 숙제

육아휴직을 하며 써니와 함께하는 하루는 정말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를 만큼 변화무쌍하다. 눈 뜬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점심 먹일 준비를 해야 하고, 점심 먹이고 치우고 정신 차려보면 저녁을 준비해야 할 시간이다. 물론 매 끼니를 준비하기가 쉽지는 않지만, 오물오물 먹는 모습을 보면 힘이 나서 다음에는 어떤 것을 해줄까 신이 난다. 그런데 하루는 밖에서 아주 잘 놀고 온 저녁부터 몸이 뜨끈뜨끈해지는 것 같더니 열이 39도를 훌쩍 넘겨 버렸다. 서둘러 해열제를 먹이고 미온수를 적신 손수건을 열심히 몸을 닦아 주었지만 열은 쉽사리 내리지 않았다. 그렇게 걱정되는 마음으로 아내와 나는 날을 꼬박 새우고 말았다. 문제는 고열이 나기 시작하자 먹는 것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매일 아침 그렇게 잘 먹던 우..

삶의 재조명 2021.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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