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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재조명 50

벚꽃, 그리고 추억(追)

4월이 되니 온 거리의 가로수에는 눈꽃같이 새하얀 벚꽃이 피기 시작한다. 하늘하늘한 바람을 맞으며 사르르 떨어지는 벚꽃을 보고 있으면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했던 '엄마'가 떠오른다. 엄마와 마지막으로 인사하던 그날, 병원 앞에는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2023년 4월 써니와 조카의 생일이 단 하루 차이라서 가족들이 함께 모여 생일파티를 하러 내려갔던 금요일 저녁, 내일이면 할머니를 볼 수 있다며 아이들은 잔뜩 신이 나서 뛰어다녔다. 우리도 병원 안에 모두가 함께 모여 있을 수는 없으니 요양원 1층 로비에서 케이크에 촛불을 꽂아 사진을 찍자며 내일을 계획했다. 산들산들 불어오는 바람과 그에 맞추어 흐드러지게 핀 벚꽃이 춤을 추는 덕분에 사진이 참 예쁘게 나올 것 같아 나 역시도 잔뜩 기대가 되었..

삶의 재조명 2024.04.04

'온유'의 첫 번째 이야기 : 얼음들

2월로 접어들자 날씨가 제법 따뜻해지는가 싶더니 다시 하얀 눈이 펑펑 내리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대중교통을 타려고 버스 정류장에 우두커니 서서 하얗게 내리는 눈을 맞았다. 그렇게 잠깐 눈을 맞았는데 녹아버린 눈 때문에 으슬으슬 추워졌고 해가 지고 나니 몸이 얼어버리는 것 같았다. 그렇게 해질 무렵 창밖으로 소복하게 쌓이는 눈으로 조금씩 얼어가는 세상을 바라보면서 한 노래가 생각이 났다. "Akdong Musician(AKMU) - 얼음들(MELTED)" 붉은 해가 세수하던 파란 바다 검게 물들고 구름 비바람 오가던 하얀 하늘 회색 빛들고 맘속에 찾아온 어둠을 그대로 두고 밤을 덮은 차가운 그림자마냥 굳어간다 얼음들이 녹아지면 조금 더 따뜻한 노래가 나올텐데 얼음들은 왜 그렇게 차가울까 차가울까요 Why ..

삶의 재조명 2024.02.26

아빠, 실수해서 미안해...

어느덧 써니는 26개월에 접어들면서 배변훈련을 시작했다. 어린이집에서 언니 오빠들, 그리고 친구들이 화장실 이용하는 것을 보자 조금씩 관심을 보인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아직 이른 감이 있어 보이는 것 같아 너무 섣불리 시작한 것은 아닐까 걱정되었지만, 어린이집 선생님께서 이렇게 스스로 관심을 보일 때 시작해야 한다며 적극적으로 가정에서도 배변 훈련에 동참해줄 것을 권유하셨다. 그래서 예전에 아내가 사은품으로 받았던 유아변기와 함께 예쁜 속옷을 주문하고 써니와 함께, 그리고 어린이집 선생님의 응원에 힘입어 배변훈련을 시작하였다. 그와 동시에 아내와 함께 여러 육아서 및 육아 영상을 찾아보며 어떻게 배변훈련을 해야 하는지 찾아보고 적용해보려 노력하였다. 여러 조언과 방법들의 공통된 의견으로는 바로 아이의 ..

'키친타월' 같은 사람

나는 오랜 시간 동안 자취생활을 하면서 요리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스스로 요리 과정을 즐기기도 하고, 내가 정성스럽게 만든 음식을 아내가, 그리고 써니가 맛있게 먹어 줄 때면 행복함을 느낀다. 요리를 하게 되면 자주 사용하게 되는 것이 있는데, 바로 '키친타월'이다. 키친타월은 다방면으로 쓸모가 많다. 키친타월은 흡수력이 좋아 요리 중간중간에 주변에 흘린 물을 닦을 때에도, 그리고 기름이 섞인 음식을 할 때 식재료의 물기는 물론 기름기를 제거하는 데에도 아주 탁월하다. 또한 일반 티슈와는 다르게 물을 흡수하였을 때에도 찢기지 않고 그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기 때문에 사용 후 처리하기에도 아주 수월하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써니 장난감으로도 사용하기에 아주 좋다. 얼마 전, 일이 일찍 끝나 집에 와서 ..

삶의 재조명 2022.06.15

내 안의 작은 여우

2022년을 시작하면서 한 다짐 한 가지가 있는데, 바로 ‘성격 통독’이다. 매 신년이 되면 상반기에 한 번, 하반기에 한 번, 총 두 번 통독해야겠다고 다짐하고서는 결국은 조금씩 밀려서 두 번을 다 통독하지 못하고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며 한 해를 마무리하곤 했다. 그래서 올해는 욕심을 버리고 한 번만 통독하더라도 조금 깊이 묵상을 해보리라 다짐하였다. 그래서 한 구절 한 구절 읽으며 단순히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깊이 생각해 보려고 노력한다. 그러던 중, 얼마 전 아가서를 읽던 중 나의 눈과 귀를 사로잡은 한 구절이 있다. 바로 아가서 2장 15절이다. 아가서 2:15 우리를 위하여 여우 곧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 우리의 포도원에 꽃이 피었음이라 Song of Songs 2:15, KJV..

삶의 재조명 2022.04.05

엄마, 그리고 여자

내 핸드폰에는 ‘엄마’가 아닌 엄마 이름으로 저장이 되어 있다. 내가 아는 한, 엄마는 결혼하면서부터는 아내로서, 그리고 엄마로서 살아왔기에, 그저 나의 엄마가 아닌 한 여자로서 살아갔으면 하는 마음이 담긴 하나의 바람이기도 하다. 내가 엄마도 여자인 것을, 아니 한 인격체로서 꿈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은 고등학생이 되어서 이다. 17여 년을 그저 엄마로서의 삶을 살아오던 사람이 어느 순간 목표가 생겼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밤낮으로 노력하는 모습이 나에게 아주 크고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었다. 어느 날 저녁, 엄마가 저녁식사를 하면서 나에게 아주 들뜬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선호야, 엄마가 목표가 하나 생겼어. 엄마, 운전면허 딸 거야!” 군산이라는 소도시에서도 시골에서..

삶의 재조명 2022.01.19

한 걸음 한 걸음

써니는 12개월에 접어들자 주위에 있는 사물을 잡고 일어서 조금씩 걷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 떼기 시작하더니, 요즘에는 툭하면 잡아주는 내 손을 뿌리치고 혼자 걷고 싶어 한다. 하지만 아직 완벽하게 균형을 잡을 수 없어 곧잘 넘어지곤 한다. 그렇게 몇 번 혼자 걷기를 시도하다가 마음처럼 되질 않으니 온갖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넘어지지 않게 잡아주는 내 손을 뿌리치지만 않으면 원하는 목적지까지 수월하게 갈 수 있을 텐데 말이다. 그걸 모르는 아이이기에 여전히 도와주는 손을 뿌리치며 실패를 거듭하고 있었다. 한참을 도전하다가 결국 울음이 터진 써니를 안아 달래다가 하나님 보시기엔 우리도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하나님께서는 가장 알맞은 때와 방법으로 붙드는데 우리는 여전히 내..

내가 감당해야 할 숙제

육아휴직을 하며 써니와 함께하는 하루는 정말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를 만큼 변화무쌍하다. 눈 뜬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점심 먹일 준비를 해야 하고, 점심 먹이고 치우고 정신 차려보면 저녁을 준비해야 할 시간이다. 물론 매 끼니를 준비하기가 쉽지는 않지만, 오물오물 먹는 모습을 보면 힘이 나서 다음에는 어떤 것을 해줄까 신이 난다. 그런데 하루는 밖에서 아주 잘 놀고 온 저녁부터 몸이 뜨끈뜨끈해지는 것 같더니 열이 39도를 훌쩍 넘겨 버렸다. 서둘러 해열제를 먹이고 미온수를 적신 손수건을 열심히 몸을 닦아 주었지만 열은 쉽사리 내리지 않았다. 그렇게 걱정되는 마음으로 아내와 나는 날을 꼬박 새우고 말았다. 문제는 고열이 나기 시작하자 먹는 것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매일 아침 그렇게 잘 먹던 우..

삶의 재조명 2021.05.23

'나눔'의 또다른 의미

아내는 오래전부터 '컴패션' 단체를 통해 두 명의 아이를 후원하고 있다. 물론 생면부지의 아이를 매달 후원한다는 것이 사실 쉽지 않지만, 아내는 그렇게 가진 것을 조금씩 나누어 주는 것에 대해 확신을 갖고 있었다. 나에게는 커피 몇 잔 마시지 않으면 모을 수 있는 몇 만원이지만, 그 아이에게는 꿈과 희망을 키울 수 있는 소중한 것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나눌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이냐며 환하게 웃으며 말하는 아내였다. 한자로 '나누어 주다'라는 뜻의 '給'가 있다. 糸(가는 실 사)자와 合(합할 합)자가 결합한 모습으로, 給자는 긴 실을 만들기 위해서는 계속 다른 실을 이어주어야 한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한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우리의 삶에서 나눔을 실천하는 것은 거창한 것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삶의 재조명 2021.04.28

처음처럼

육아휴직을 하게 되면서 스스로 다짐했던 것은 '이왕 시작한 것, 나도 즐겁게' 해 보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써니와 함께할 수 있는 놀이도 구상해 보고, 교구도 만들어 보고, 책도 읽어가며 참 고군분투했던 3월이었다. 그렇게 바쁜 3월이 지나 어느 정도 이 생활에 적응하고 나니, 몸이 먼저 나태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이전에는 써니가 잠들면 거실을 정리하고 육아서적을 보거나 글을 쓰곤 했는데,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써니와 함께 누워있곤 했다. 그러자 어떤 놀이를 해 볼까 고민하는 것도, 육아서적을 읽는 것도, 성경 읽는 것도, 글 쓰는 것조차도 차일피일 미루게 되었다. 그렇게 몸과 마음이 나태해지자, 써니가 깨어있는 시간에도 나의 눈과 손은 써니가 아니라 휴대폰에 가있는 것을 느끼고 스스로 깜짝깜짝 놀랄 ..

삶의 재조명 2021.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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