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핸드폰에는 ‘엄마’가 아닌 엄마 이름으로 저장이 되어 있다. 내가 아는 한, 엄마는 결혼하면서부터는 아내로서, 그리고 엄마로서 살아왔기에, 그저 나의 엄마가 아닌 한 여자로서 살아갔으면 하는 마음이 담긴 하나의 바람이기도 하다.
내가 엄마도 여자인 것을, 아니 한 인격체로서 꿈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은 고등학생이 되어서 이다. 17여 년을 그저 엄마로서의 삶을 살아오던 사람이 어느 순간 목표가 생겼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밤낮으로 노력하는 모습이 나에게 아주 크고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었다.
어느 날 저녁, 엄마가 저녁식사를 하면서 나에게 아주 들뜬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선호야, 엄마가 목표가 하나 생겼어.
엄마, 운전면허 딸 거야!”
군산이라는 소도시에서도 시골에서 살았던 우리는 무언가를 배우고 도전하기에는 어려운 환경이었다. 심지어 자차가 없으면 도심으로 나가는 것조차 어려웠다. 버스도 한 시간에 한 대가 있었지만, 비나 눈이 많이 오는 날이면 버스가 자체 파업(?)을 하는 그런 곳이었다. 그만큼 시골에 살고 있었던 터라 운전할 수 있다는 것은 아주 큰 장점 중 하나였다. 그런 시골에서 그저 주부로서 살아온 지 20여 년이 다 되어 가는데, 갑자기 운전면허라니? 사실은 당시에는 엄마의 도전이 크게 현실로 와닿지는 않았다.
다음날 저녁, 하교 후 돌아오는 길에 엄마는 서점에 들러 운전면허 필기 문제집을 구매하였다. 그렇게 저녁에 내가 공부하고 있으면 엄마도 옆에서 운전면허 문제집을 풀고 함께 공부했다. 엄마가 성경책을 읽는 것, 그리고 주방에서 집안일을 하는 것이 아닌 다른 무언가를 하고 있는 것이 생소하게 느껴졌다. 아니, 그렇게 생기 있는 얼굴을 본 것은 처음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엄마는 며칠을 공부하시더니, 주말에 가서 운전면허 필기시험을 합격해 오셨다. 한껏 상기된 얼굴로 합격증을 흔들어 자랑하던 엄마의 얼굴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렇게 엄마는 합격의 기세를 몰아 운전면허 실기도 합격하였고, 1종 운전면허를 취득하였다. 트럭을 능숙하게 몰고 주차하며 내리는 엄마의 얼굴은 내가 알던 엄마의 얼굴이 아니었다. 그때 나는 느꼈다. 엄마도 엄마이기 전에, 나와 같이 꿈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것을 말이다.
사실 엄마는 어렸을 때부터 부단히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그 옛날, 유아교육과를 졸업 후 전주에서 규모 있는 유치원에서 근무하셨다고 한다. 그때 만들어 놓았던 정성 어린 교구들을 보면 지금 밖에 내어 팔아도 손색이 없을 만큼 완벽했다. 한 땀 한 땀 정성 들여 그린 그림과 교구들은 나의 어린 시절 TV와 장난감을 대신하였고, 그 무엇보다도 넓고 깊은 상상력의 세계로 빠져들게 하였다. 그리고 내가 초등학교 때에는 아버지의 목회를 돕고 싶으시다며 전남 광주까지 상담학을 배우러 다니셨고 아주 우수한 성적으로 수료하셨다. 그리고 당시 요리 자격증은 주일에만 시험을 보았기 때문에 시험을 치르지는 못하였지만, 제빵부터 제과, 한식, 양식, 중식까지 완벽하게 맛을 낼 줄 아셨던 만능 엔터테이너였다.
며칠 전, 운전면허증을 흔들며 트럭에서 내리던 엄마의 얼굴을 본 것 같았다. 바로 이직 준비를 하고 있는 아내에게서 말이다.
결혼 후, 써니가 태어나고 아내는 출산과 함께 일을 쉬게 되었다. 사실 써니가 찾아오는 기쁨과 동시에 떠오른 건 아내의 직장의 문제였다. 그전까지는 사실 경력단절에 대해 많이 들어보기는 하였지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결혼과 함께 임신은 당영한 하나님의 섭리이니 우리에게 너무 당연한 일로만 생각하고, 그 후의 일들에 대해서는 깊게 고민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또한 성격 좋은 아내가 직장 문제로 걱정하리라고는 생각을 못했다. 임신과 동시에 30년을 넘도록 공들여 쌓은 자신의 스펙이 무너질 수도 있다는 엄청난 무게감을 느꼈던 모양이다. 아내 스스로는 내가 감히 상상할 수 없었을 만큼 큰 두려움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하루가 다르게 달라지는 신체와 더불어, 출산의 고통과 막연한 불안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써니가 7개월 정도가 되었을 때, 육아로 심신이 지친 아내를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을까 고민을 하다가 생각한 것이 바로 육아휴직이다. 조심스레 아내에게 내가 육아휴직을 할 테니 복직을 준비해 보는 것은 어떨까 하고 물었다. 순간 눈이 번쩍 거리는가 싶더니 아내는 이내 울음을 터뜨렸다. 막상 복직을 하려 하니 잘할 수 있을까 두려움이 앞선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의 예상대로 아내는 복직 후 아주 잘 적응하였고, 올해 3월부터는 새로운 도전을 앞두고 있다. 그 도전을 앞두고 이런저런 공부를 하며 신이 나서 재잘대는 모습을 보며 나도 모르게 피식 웃게 된다.
"아내 역시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루며 살아가는 사람이구나!"
나는 아내를 ‘써니 엄마’로 부르고 않고 그렇게 부르고 싶지 않다. 지금도 연애할 때의 호칭 그대로 부르고 있다. 그 이유는 엄마가 그랬듯, 아내 역시도 앞으로 본인의 색을 잃지 않고 꿈을 꾸며 그리고 그 꿈을 이루며 살았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분명 써니를 보내 주심은 나와 아내가 협력하여 써니를 잘 키워야 하고, 그리고 아내에게는 엄마로서의 책임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써니 엄마로서 해야 할 많은 짐과 책임들만을 생각하지 않았으면 한다. 아내가 ‘엄마’라는 이름 때문에 자신을 잃지 않았으면 하고, 하나님께서는 아내가 속한 공동체 안에서 아내를 통해 이루어 가실 크신 계획이 있음을 믿기 때문이다.
앞으로 써니가 성장하는 동시에 많은 것들이 변화들이 있을 것이고, 그에 따라 나와 아내에게 요구되는 것들이 있을 것이다. 특히 새로운 도전을 앞둔 아내에게는 모든 것이 생소하고 낯설어 힘에 부칠 때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힘든 과정 역시도 하나님의 크신 계획 안에 있는 일이기에 아내에게 주어진 일을 통하여 예수님의 향기를 품어내는 사람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또한 3월부터 시작될 새로운 도전 역시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꿈"이라는 것을 믿기에, 항상 꿈을 꾸며 맡겨주신 사명대로 노력하는 아내가 되기를 응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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