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재조명

내가 감당해야 할 숙제

kshroad 2021. 5. 23.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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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휴직을 하며 써니와 함께하는 하루는 정말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를 만큼 변화무쌍하다. 눈 뜬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점심 먹일 준비를 해야 하고, 점심 먹이고 치우고 정신 차려보면 저녁을 준비해야 할 시간이다. 물론 매 끼니를 준비하기가 쉽지는 않지만, 오물오물 먹는 모습을 보면 힘이 나서 다음에는 어떤 것을 해줄까 신이 난다.

그런데 하루는 밖에서 아주 잘 놀고 온 저녁부터 몸이 뜨끈뜨끈해지는 것 같더니 열이 39도를 훌쩍 넘겨 버렸다. 서둘러 해열제를 먹이고 미온수를 적신 손수건을 열심히 몸을 닦아 주었지만 열은 쉽사리 내리지 않았다. 그렇게 걱정되는 마음으로 아내와 나는 날을 꼬박 새우고 말았다.

문제는 고열이 나기 시작하자 먹는 것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매일 아침 그렇게 잘 먹던 우유, 주스, 아기 치즈를 입에 대지도 않았다. 열이 나니 확실히 몸이 부대끼나 보다 생각하고 먹기 싫으면 먹지 말라고 달래주었다. 그렇게 써니는 점심도 저녁도 먹는 둥 마는 둥 하였다. 그래도 놀기는 잘 노니 오늘 잘 자고 일어나면 내일은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다음 날이 일어난 써니는 기운마저 없이 품에 안겨있으려고만 하였다. 온종일 징징거리며 보채기 시작했다. 그렇게 이틀 동안 아무것도 먹지를 않자 마음이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처음 겪는 몸 상태가 얼마나 낯설기에 이렇게 먹지를 못하고 힘들어할까…. 짠하네.”

그래서 그동안 써니가 좋아했던 것을 해주면 조금이라도 먹을까 하여 등갈비, 잡채, 아기 국수를 열심히 준비했다. 그러나 고열이 지친 써니는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며 도통 먹지를 않았다. 안 먹는 것은 물론이며 손에 잡히는 모든 음식을 집어 던지기 시작하자 내 마음까지도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아니, 어떻게든 먹이려고 노력한 정성이 보이지 않니? 조금이라도 먹어주면 얼마나 좋아!”

그렇게 짠한 마음과 괘씸한 양가감정으로 써니를 재우고 책을 펴자 이런 구절이 보였다.

아이의 문제 행동 때문에 마음이 힘들다면 그 문제는 ‘내 숙제’입니다.
내 숙제가 버겁다고 아이를 탓하진 마세요.
<어떻게 말해줘야 할까(2021)>, 오은영, 김영사, 경기 파주, p.108.

이 구절을 보며 내 불편한 감정이 무엇 때문인지 돌아보게 되었다. 지금 고열로 인해 힘든 아이가 힘들어할 때, 조금이라도 먹여 회복시키고자 노력하는 것은 부모인 ‘나의 숙제’인데, 내가 힘들다는 이유로 써니 탓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 사실을 깨닫고 나자 지금 내가 감당해야 하는 이 숙제를 즐거운 마음으로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때로는 수많은 인간관계에서도 ‘나의 숙제’임에도 상대방을 탓하며 그 순간을 모면하려고 할 때가 있다. 하지만 그 불편한 마음과 상황은 사실 내가 해결해야 하는 것들이 대부분인 경우가 많다. 단지 내가 그 상황이 껄끄럽다는 이유로, 불편한 마음을 감당하기 힘들다는 이유로 타인에게 내 숙제를 떠넘겨 버리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10:13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1 Corinthians 10:13, KJV
There hath no temptation taken you but such as is common to man: but God is faithful, who will not suffer you to be tempted above that ye are able; but will with the temptation also make a way to escape, that ye may be able to bear it.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에게 감당할 시험만이 허락하신다고 하시니 말이다. 또한, 내가 힘들고 버겁다고 생각했던 그 순간에 하나님께서 피할 길을 내사 ‘능히’ 감당하게 하신다고 약속하신다.

앞으로 써니와 함께하는 시간 동안 마음이 힘들 때가 많이 있을 것이다. 그럴 때면 그 상황과 문제는 내가 감당해야 할 ‘나의 숙제’임을 기억하며 기쁜 마음으로 기꺼이 감당하기를 다짐해 본다. 그와 동시에 미쁘신 하나님께서 감당할 힘과 피할 길을 주시어 모든 상황을 능히 감당하게 하심을 기억하며 지혜를 허락해 달라고 꾸준히 기도해야겠다.

써니야, 아프지 말자! 내일도 맛있는 밥 해줄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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