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월, 아버지가 환갑이 되셨다. 아버지께 무엇을 선물해 드릴까 고민하다가 아버지와 단둘이서 여행을 가기로 했다.
그동안 평생 시골에서 목회에만 전념하셨던 아버지시기에, 나는 휴양지로 가서 근사한 호텔에서 시간을 보내시도록 하고 싶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선택은 '중국'이었다. 북경에 가서 자금성과 만리장성에 가보고 싶어 하셨다.
그렇게 아버지와 나는 북경으로 4박 5일의 여행을 떠났다.
그동안 나는 아버지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아버지와 함께한 4박 5일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중국어를 배운 적이 없으시기에 내가 없으면 전혀 의사소통을 못 하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전혀 당황하지 않으시고 노트를 꺼내 필담을 통해 의사소통하였다. 아주 간결하지만 정확한 의사소통 방법이었다. 그렇게 아버지는 4박 5일 내내 쉬지 않고 노트에 필담하시며 여행을 즐기셨다.
내가 아버지께 놀랐던 또 한 가지는 해박한 역사 지식이었다. 중문학을 전공한 나보다도 중국 역사와 인물에 정통하신 아버지셨다. 미리 공부하여 곳곳의 이야기를 설명해 드렸는데, 어느 순간 덧붙여 말씀해 주시더니 나중에 내가 오히려 아버지께 설명을 듣고 있었다.
30년을 넘게 함께 살아오며 아버지를 잘 이해하고 있다 생각했지만, 나는 아버지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는 것을 여행을 통해 깨달았다. 4박5일 동안 함께 먹고 자고 걸으며 나누었던 이야기들 속에는 그동안 아버지께서 살아오신 삶의 지혜를 느낄 수 있었다.
시골에서 목회하시면서 있었던 몇 가지 에피소드를 듣는데, 입이 쩍 벌어져 닫히지 않았다. 작은 교회 안에서 감당해야 할 목회자로서의 무게감은 감히 내가 상상할 수도 없었다. 작은 교회이기에 아버지께서 감당해야 할 역할은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교회 수리, 전기 배선, 배관 등은 물론 형사법에서 민사법까지 성도들이 마주칠 수 있는 삶의 다양한 영역 모두 아버지의 손길이 필요했다.
그렇게 아버지께서는 성도들의 신앙은 물론 진정한 삶을 함께 나누는 목회자로서 사명을 감당하고 계셨던 것이다.
사도행전 20: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4박 5일의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잠드신 아버지를 보며 존경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라면 그런 무게를 감당할 수 있었을까, 아니 엄두라도 낼 수 있었을까.
영혼을 구원하는 사명을 감당하고자 평생을 시골에서 말씀을 전하신 아버지. 맡겨주신 자리에 묵묵히 복음 전하시는 일에 최선을 다하셨던 아버지. 항상 영육 간 강건하여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는 목회자가 되시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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