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기독대안학교 교사이다. 공교육의 한계를 뛰어넘어 기독교세계관을 기반으로 삶을 함께 나눌 수 있는 교육의 현장에 있음에 감사하다. 그러나 마음속에 떠나지 않는 한 가지의 불안함이 있다. 바로 경제적인 부담감이다. 하나님께서는 항상 필요한 만큼 채워주셨지만, 넉넉지 않은 형편에 항상 마음 한편에는 늘 불안함이 있었다.
아내와 만남을 망설였던 것도 이 이유였다. 계속하여 나에게 호감을 표하던 아내였지만, 나의 이런 환경 때문에 저렇게 해맑은 미소를 잃진 않을까 하는 생각에 아내와의 만남을 주저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캐나다로 유학을 떠난다는 말을 전해왔다. 덜컥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여전히 불안함에서 벗어나진 못한 나는 마차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 아내는 캐나다로 떠났고, 며칠은 함께 안부를 묻다가 그마저도 시차로 인해 끊기게 되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연락이 소원해 짐과 동시에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이렇게 멀어지는 것이 오히려 그녀에게는 좋은 일일지도 모른다는 합리화를 하며 체념했다. 그렇게 나는 세상과 담을 쌓으며 더욱 열심을 다해 학교 일에 전념했다.
그때부터 나에게 하나의 습관이 생겼다. 퇴근하고 집에 와서 책 읽다가 잠시 차를 마시면서 휴대폰 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사실 나는 SNS를 통해 꾸준히 그녀의 소식을 보고 있었다. 하루하루 그녀의 포스팅을 찾게 되는 나를 보며 그녀에 대해 느끼는 나의 감정이 단순히 호감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단지 이렇게 기도 할 뿐이었다.
“하나님, 어린 시절부터 기도하였던 대로 ‘만남의 축복’을 허락해 주세요.”
그렇게 조금 시간이 흐른 뒤, 문득 그녀에게 메시지를 보내 볼까 하는 마음이 생겼다. 답장이 안 올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하였다. 다가오던 그녀를 계속해서 밀어내던 나였기 때문이다. 그래도 우선 이런 마음을 허락하신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하며 메시지를 보냈다.
띠링! 그녀의 답장 하나에 얼어붙은 마음이 녹아내리는 듯 편안함이 몰려왔다. 그 순간 이 사람에 대한 나의 마음을 재차 확인하였지만, 여전히 나는 용기를 내지 못하였다. 나에게는 여전히 풀리지 않은 경제적인 여건이 그녀와의 만남을 머뭇거리게 하였다.
그렇게 여전히 머뭇거리고 있던 나에게 수업 중 하나님께서 찾아오셨다. 초등학교 3학년 친구들과 함께 물건을 사고파는 표현을 배우며, 말씀 안에서 ‘돈’이라는 것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까 이야기를 나누는데, 전도서 말씀이 내 눈에 들어왔다.
전도서 5:19
어떤 사람에게든지 하나님이 재물과 부요를 그에게 주사 능히 누리게 하시며 제 몫을 받아 수고함으로 즐거워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
말씀을 읽고 묵상하면서 나의 삶은 하나님께서 이끄신다고 고백하는 크리스천이라면, 재물 역시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다는 것에 확신을 하게 되었다.
“하나님! 이 사람과 함께 하고 싶어요. 하지만 내 어떤 여건 때문에 이 사람을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아요. 말씀처럼 저의 몫을 주셔서 능히 누리며 기쁨으로 감당하게 해주세요!”
그렇게 기도를 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더이상 경제적인 문제들이 나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맡아주시리라는 확신이 생긴 것이다. 그와 함께 내 마음에는 용기가 생겨 마음속 깊이 숨겨둔 말을 꺼낼 수 있었다.
“우리, 이제 만나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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