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군대에서 만난 친구와 함께 통화를 하다가, 달라진 군대 생활에 대해서 이야기가 나왔다. 군인 월급은 10여 년 전보다 열 배 이상으로 인상되었고 휴대폰까지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러면서 친구가 장난스럽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라떼는 말이야~"
최근 우리 사회에는 '꼰대' 또는 '꼰대질'이라는 말이 유행했다. '꼰대, 꼰대질'란 은어로 기성세대가 자신의 경험을 일반화하여 젊은 사람에게 어떤 생각이나 행동 방식 따위를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행위를 속되게 이르는 말이다. 마치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 경험했던 것이 전부인 것 마냥 여기며 자신의 기준과 방법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사람들을 풍자하며 사용한다.
매 학기가 시작되면서 학생들의 중국어 발음을 교정하다가 보면, 신입생들을 두 가지 분류로 나누어 조편성을 한다. 첫 번째는 한 번도 중국어를 배워보지 않은 친구들과 두 번째는 이전에 한 번이라도 중국어를 학습해 본 적이 있는 친구들이다.
왜냐하면 이전에 한 번도 중국어를 경험해 보지 못했던 친구들은 발음 수업에 따라 원활하게 발음 교정이 되는 반면, 이전에 한 번이라도 중국어를 배워본 적이 있는 친구들은 이전 습관들이 남아 있어 교정하는 데에 훨씬 더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본인들의 발음이 잘못되었음을 수차례 알려 주어도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기도 하고, 발음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이전 습관에서 벗어나기란 생각처럼 쉽지 않다. 그래서 그런 친구들을 따로 조편성을 하여 별도의 교정 과정이 필요하다.
학기가 시작되면 학생들에게 무엇이든지 '제대로' 아는 것이 중요하고, 그리고 그보다도 알고 있는 것을 삶에서 실현시키려 노력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우리는 매 순간 살아가며 무언가를 배우고 알며 살아가고 있다. 무언가를 알아간다는 것은 참 중요하다. 하지만 단지 '지식으로서의 앎'에서 그치는 것은 반쪽짜리 앎이다. 지식을 얻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알게 된 사실을 삶 속에 적용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진짜 앎이기 때문이다.
로마서 1:21~23 Romans 1:21-23, KJV |
많은 사람들이 예배를 드리며 설교를 듣고, 교회에서 진행되는 많은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조금씩 하나님을 알아가려 노력한다. 하지만 문제는 모두 하나님을 나의 지식적인 앎에 가두어 둔 채 나의 삶과는 별개인 마냥 살아간다는 것이다.
설교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고 찬양을 부르며 기뻐하는 것도 잠시, 예배가 끝나고 교회 문을 열고 나가는 순간 방금 받은 은혜를 한순간에 잊고 내가 중심인 세상으로 돌아간다.
지금 내 눈 앞에 있는 것 이외에는 다른 것을 생각하지 않고 보지도 않는 고집불통 '꼰대'처럼, 하나님께서 주신 것에 감사하지도 않고 스스로를 지혜 있다 여기며 나 자신이 우상이 되어 몸과 마음이 썩어가는 것도 모르고 말이다. 그러고는 한 순간 돌아서면 남아있는 것이 하나도 없어 허망하여 다시 절망하곤 하게 된다.
우리는 생각을 바꾸어 또다른 '꼰대'가 되어야 한다. 내 생각과 욕심을 버리고 하나님의 방법과 뜻만을 고집하며 살아가는 '하나님 바라기, 꼰대'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통해 영광 받으실 것이며 우리의 생각과 마음이 밝아질 것이라 생각한다.
매일 말씀과 찬양을 통해 은혜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하나님만을 바라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그 은혜를 알고 느끼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은혜와 사랑을 우리의 삶의 곳곳에 나누어 주는 실천의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길 소망한다.
오늘의 질문💡
: 말씀을 통해 깨달아졌지만, 실제로 실천하지 못했던 것은 무엇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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