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재조명

나에게 있는 기름 병 하나

kshroad 2021. 1. 14.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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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시절 나는 참으로 많은 것들을 스스로 해결해야 했다. 부모님과 고등학교 졸업식과 동시에 용돈을 받지 않기로 약속했고, 나는 본가를 떠나 타지에서 홀로 대학생활을 시작해야 했다. 그렇게 스무 살의 나는 자취 월세, 관리비, 식비, 교통비 등등 매달 정기적으로 들어가는 돈과 더불어 교재비 및 대학생활에 필요한 돈을 벌어야만 했다. 그렇게 나는 무한 아르바이트에 뛰어들게 되었다.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바텐더, 편의점, 식당 서빙, 통역 알바, 과외, 호텔 주방 설거지, 미술관 설치 등등 내가 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는 다 해 본 것 같다.

그와 더불어 근로장학생을 신청하여 공강 시간에는 학부 사무실에서 잡일과 심부름을 했다. 그럼에도 학비를 충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였기에 나는 장학금을 계속 받기 위해서 학점 관리도 해야 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쉬지 않고 열심히 아르바이트와 학업을 병행하며 치열하게 살았던 것 같다.

 

그렇게 하루하루 열심히 생활하던 어느 날, 아르바이트가 끝나고 버스비를 아끼기 위해 집으로 40분을 걸어가던 도중 문득 두려움이 느껴졌다. 이렇게 열심히 살고 있는데 미래에 대해 확정된 것은 전혀 없다는 사실이 참으로 아득하게만 느껴졌다. 언제까지 아르바이트만 하며 살 수 없을 텐데, 불확실한 미래가 나를 깊은 무기력의 상태로 빠져들게 했다.

그렇게 며칠을 정신없이 지내다가 지도교수님을 찾아갔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내 걱정을 장황하게 털어놓았다. 지도교수님의 대답은 아주 간단했다.

“네가 할 수 있는 것부터 해. 책부터 읽어.”

나는 당장의 경제적인 어려움과 걱정이 해결되지 않았는데, 천하태평하게 책을 읽어야 한다는 교수님의 조언이 당시에는 너무 무책임하고 무성의해 보였다. 그 날 저녁 아무리 내 잔머리를 굴려보아도 내 미래에 대한 해결책은 보이지 않아 보였다.

그때, 지도 교수님의 말씀이 떠올라서 눈 앞의 책들을 마구잡이로 읽게 되었다. 평생에 그렇게 집중력 있게 공부했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아르바이트와 수업할 때 외에는 책을 손에 놓지 않았다. 매일 단어장과 책을 손에 잡고 있으니 자연스럽게 전공지식이 조금씩 쌓였고 다양한 분야의 지식이 생기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끝없이 노력하여 교사의 꿈을 이루게 되었다. 그때 읽었던 많은 책들이 실제 교직생활에 필요한 상황에 적용 및 대처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열왕기하 4:1~7


엘리사를 찾아간 여인은 정말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어 보인다. 남편이 죽어 과부가 된 것은 물론이며, 빚진 것들 때문에 두 아들이 종으로 팔려가게 생겼다. 정말 해결될 수 없을 것 같은 상황에서도 여인은 엘리사를 통해 하나님께 묻는 믿음을 보여준다. 그렇게 엘리사는 믿음의 여인에게 가진 것이 무엇이냐 묻고, 기름 한 병이 있다는 여인의 대답에 내놓은 대안이 이웃들에게 빈 그릇을 빌려 오라는 것이다. 당장의 어려움들을 기적과 같이 해결해 주는 것도 아니고, 빈 그릇을 빌릴 수 있을 만큼 많이 빌리라는 것이다.

만약 내가 그 여인이었다면 화를 내었을지도 모른다. 내 남편이 그렇게 열심히 하나님을 따랐으니 현실적인 도움을 줄 수는 없느냐고 묻고 따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여인은 당장의 눈물을 닦고 일어나 순종하여 이웃들에게 빈 그릇을 빌려 왔다. 그렇게 그릇들을 빌려 문을 닫자, 빈 그릇 모두에 기름이 차게 되는 기적을 보여주신다.
 
때로는 하나님의 방법이 우리들의 생각과 계획에는 보잘것없이 작고 초라해 보일지도 모른다. 아니 무의미해 보여서 그대로 행하는 것이 옳은 일인가 하는 의구심이 생길지도 모른다.

그러나 때때로 인간의 방법이 아닌 하나님의 방법으로 일하실 때,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일들은 너무나도 기본적이고 당연한 일이다. 마치 학생이 책을 읽고 공부하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저 지금 나에게 주어진 일들에 집중하면 되는 것이다.

새해를 맞은 지금 우리는 또 다른 특별한 일을 계획하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당장 맡겨주시고 여건이 허락되고 할 수 있는 일들을 하기 위해 움직이는 것이다. 비록 그 일이 하찮아 보이고 부족해 보이더라도,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 말씀에 순종하기를 원하신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부족한 입술과 손을 통하여 일하시고 우리의 빈 그릇을 채우시고 또 채워 주실 것이다. 
 
그리고 여인이 문을 닫고 들어가 기름을 부어 차는 대로 옮겨 담았던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세상의 어떤 것에 관심을 보이거나 귀 기울이지 않고 온전히 하나님께 집중하기를 원하신다. 그렇게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고 오로지 주님의 말씀에 집중할 때, 우리가 생각하지 못하는 방법으로 우리의 빈 그릇을 채우시고 또 채우실 것이다. 그저 우리는 하나님께 순종하고 집중하면 되는 것이다.
 
나는 엘리사를 통해 말씀하신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고 집중했던 이 여인의 모습을 닮아가길 소망한다. 고난과 어려움 속에 좌절되더라도,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에 최선을 다하면서 세상의 문을 닫고 오직 주님께만 집중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오늘의 질문
:나는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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