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살아가며 필연적으로 공동체에 속해 살아가고 있다. 공동체라는 정의처럼, 생활이나 행동 또는 목적 따위를 같이 하여 순간순간 뜻을 합하여 손 잡고 걸어가고 있다.
하지만 때론 같은 공동체에 속해 있지만 서로 추구하는 방향이 조금 달라 오해가 생기는 경우가 있다. 오해가 쌓이면 감정이 격해지기에 주어진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고, 내가 듣고 싶은 대로 혹은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 가려고 나에게 유리하게끔 재해석하곤 한다. 그렇게 오해가 오해를 낳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결국에는 목적 없는 짙은 감정싸움만 하게 된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전도서 말씀을 통해 우리가 보여야 하는 공동체의 모습을 분명하게 말씀해 주신다.
전도서 4:9~12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혹시 그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또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공동체를 이루어 살게 하심의 목적은 분명하다. 내가 힘들고 지쳐서 넘어졌을 때 일으켜 줄 수 있는 존재를 예비하시고, 어려운 상황에서 나와 함께 서서 뜻을 같이해 줄 수 있는 존재를 세워 주신 것이다. 이 사실이 나에게 있어서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모른다.
얼마 전, 학교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작은 오해들이 쌓여 선생님들끼리 작은 갈등이 생겼던 적이 있다. 보이지 않는 감정싸움이 오가던 도중, 한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지금 이 자리에 모인 모두가 잘 못 하고 싶었던 사람은 없어요. 그러니 이제 우리 뜻을 한 번 모아 봅시다!”
건강한 공동체에 속해 있는 사람이라면 어느 누구도 의도적으로 일을 그르치고자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다만 잘해 보고자 했던 열심들을 서로가 이해하지 못해 오해가 쌓였던 것뿐이다. 처음의 의도는 모두가 같았을 것이다. 연합하여 맡겨진 일을 잘해내는 것을 모두가 원했을 것이다. 그런데 내 계획과 다르게 흘러가는 상황에서 생겨난 속상한 감정들이 우리의 마음과 눈은 닫게 만들어 관계에 어려움이 생겨나는 것이다.
그렇다면 갈등이 생긴 상황에서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개인적으로 실천하고자 하는 방법은 두 가지이다.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상황 속에서 ‘갈등’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처음에 의도하였던 ‘목적’을 생각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 일을 맡겨주심으로 무엇을 이루어 가시길 원하시는지부터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게 ‘목적’을 분명히 한 다음에는 ‘용납’하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완벽하지 못하고 실수투성이다. 다른 사람의 부족함을 향해 있던 나의 시선을 돌려 나는 이 상황에서 어떻게 행하고 있는지 돌아보는 것이다. 혹시 감정적으로 대하고 있진 않는지, 혹은 무례한 언행을 하고 있지 않은지 돌아보는 것이다.
물론 감정이 격해 있는 상황에서 이 두 가지 방법을 적용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의식적으로라도 이것들을 떠올린 후, 상대방과 대화를 나누면 생각보다 많은 문제가 해결되곤 한다.
우리 모두가 예수님의 크신 사랑을 값없이 받았던 것처럼, 서로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용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공동체를 통해 서로의 연약함을 채워가길 원하시는 하나님의 선한 '목적'을 기억하길 원한다.
우리가 허락하신 공동체에서 예수님의 손과 발이 되어 서로 세워주고 위로하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소망한다.
오늘의 질문
: 내가 대화를 나눔으로써 용납하고 풀어야 할 오해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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