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30대의 중반이 되어 간다. 옛날에는 30대인 사람들을 보면 참 '어른'스럽다라는 생각을 했다. 매사에 여유가 있어 보이고 세상 경험이 많아 노련함이 묻어나는 그런 성숙한 '어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30대가 되고 나는 그렇게 성숙하고 노련함이 있는 '어른'인가 물음을 던저보게 된다.
주변 사람들을 보면 꼭 나이가 들었다고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닌 것 같다. 주변에 보면 나이는 어리지만 성숙한 모습으로 편안함을 주는 사람이 있는 반면, 나이는 들었지만 여전히 성숙하지 못한 태도와 말투로 불편함을 주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른'스럽다는 것은 무엇일까?
주변에 '어른'스럽다라는 사람들을 보면 하나같이 주변 사람들을 포용해 줄 수 있는 넓은 마음을 지닌 사람이다. 즉, 상대방의 상황에서 생각할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이 있는 사람을 우리는 어른스럽다고 이야기한다.
자신만의 이익을 추구하지 않는 여유 있는 마음과 태도로써 타인을 이해하고 품어주는 사람과 함께 있으면 편안하다. 왜냐하면 나의 부족한 모습을 질타하지 않고 오히려 격려해 주고 안아 줄 수 있는 마음을 지녔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진짜 '어른'과 함께 있다 보면 편안하게 이야기를 할 수 있고 마음에 평안을 얻을 수 있는 것 같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남을 위하는 마음을 키워 가는 것입니다.
20대에는 이해하지 못한 것을 30대에는 이해하고,
30대에는 이해 못 하던 것을 50대, 60대에 이해하고 품게 되는 것입니다.
<지성과 영성의 만남(2012)>, 이어령·이재철, 홍성사, 서울, p43.
어른이 된다는 것은 '남을 위하는 마음을 키워 가는 것'이라고 한다. 이전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것들을 조금씩 이해하고 그를 품어줄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진짜 '어른'이 되어가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전에는 왜 그렇게 사소한 일로 열을 내고 불평불만이 가득했었는지 가끔 생각이 날 때가 있다. 지금 그 상황과 나의 행동을 되돌아보니 내가 참 옹졸하게 행동했었구나, 내가 참 경솔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헛웃음이 새어 나올 때가 있다. 그때는 정말 그 사람이 이해가 가지 않았는데, 이제는 조금씩 '아, 그 사람이 이런 상황이었을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 나는 지금 '진짜 어른'인가 하고 되돌아 보게 된다. 어른스럽게 넓은 마음으로 격려해 주고 품어주고 있는지 돌아보면 나는 아직 걸핏하면 성내고 투덜대는 어린 아이인 것 같다.
그래서 나의 이 옹졸한 마음의 그릇을 키워 갈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기도하게 되었다. 앞으로 타인의 행동에 화가 나고 이해가 되지 않을 때면, 그 사람을 이해하고 품어줄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을 달라고 기도하려 한다.
마태복음 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우리의 몸과 마음이 힘들고 지칠 때면 더욱 타인을 이해하는 것이 어렵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을 품어주시어 쉬게 해 주시는 넓은 마음을 보여주신다. 예수님께로 만 가면 나의 힘든 상황에 공감을 얻고 위로를 얻을 수 있기에, 더 나아가 평안을 얻을 수 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모습이 우리가 갖추도록 노력해야 할 '진짜 어른'의 모습인 것이다.
물론 나와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은 참으로 말처럼 쉽지 않은 일이다. 더군다나 그렇게 나와 전혀 다른 생각과 계획을 가진 사람을 이해하고 품어준다는 것은 더욱 힘든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흠이 많은 나를 안아주셨듯이, 우리도 예수님의 마음으로 타인을 이해하고 품어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오늘 하루 예수님의 마음으로 나와 달라도 너무 다른 그 사람을 이해하고 품어주는 '어른'스러운 우리 모두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